재앙서 건진 희망 …’인류애 충전’ 뮤지컬

국내 초연 ‘컴프롬 어웨이’
9·11테러로 불시착한 마을서
주민·승객이 나눈 우정 실화
한나 역 연기한 김아영 배우
“매일 12시간씩 맹연습
자유롭게 무대서 연기 발산”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 (주)쇼노트

“잃어버린 것들을 애도하고, 새로 찾은 것들에 감사합시다.”(극 중 마지막 노래 ‘피날레’를 부르기 전, 갠더 마을 시장 클로드의 대사)

거대한 불행은 사람들 안에 잠재한 선한 의지를 발동시키기도 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촉발된 유대는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상처 입은 공동체를 새로운 희망으로 이끈다.

국내 초연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는 2001년 9·11 테러로 미국 영공이 봉쇄되며 캐나다의 소도시 갠더에 불시착한 비행기 승객들과 갠더 주민들이 겪은 실화를 다룬다. 인구 9000여 명의 갠더 마을 주민들은 수십 대의 비행기에서 내린 7000여 명의 승객을 물심양면으로 돌본다. 마을의 시장과 교사, 버스 기사, 리포터, 경찰 등은 출장을 가던 직장인, 비행기 기장, 휴가를 떠나던 커플 등과 부대끼며 평생 이어질 우정과 추억을 쌓는다.

‘컴 프롬 어웨이’는 9·11 테러 10주년이던 2011년 실제로 갠더에 방문해 주민과 승객들을 인터뷰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2015년 미국 샌디에이고 초연 뒤 2017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고 토니상 최우수 연출상 등을 수상했다. 이번 공연은 한국에서 이뤄지는 초연으로, 브로드웨이 작품을 그대로 재연하지 않고 음악과 가사 외에 많은 부분을 재창작한 논레플리카 작품으로 구성됐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인물은 뉴욕에서 일하는 소방관 아들을 둔 승객 한나다. 한나는 테러 사건 이후 아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공포에 떤다. 작품의 여러 인물 중에서 모성애라는 가장 근본적인 감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한나 역을 맡은 배우 김아영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나는 갠더에서 벌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관객들이 젖어 있을 때 9·11 테러의 처참함을 상기하며 현실감을 일깨워주는 캐릭터”라며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고통을 겪지만 갠더 주민들과의 우정을 통해 아픔을 극복하는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김아영은 2004년 뮤지컬 ‘노트르담뮤지컬’로 데뷔해 뮤지컬 ‘마리 퀴리’, 연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등에 출연한 21년 차 배우다.

사진설명
한나 역 김아영 뮤지컬 배우. 김호영기자

12명의 배우가 주연, 조연, 앙상블의 구분 없이 무대에서 연기한다. 남경주, 서현철, 최정원, 이정열 등 실력파 배우들이 의상을 바꿔가며 1인 2역 이상의 멀티 배역을 소화하고, 의자 등의 소품을 활용해 쉴 새 없이 장면을 전환한다. 김아영은 “뮤지컬계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들이 아침 10시부터 밤 10까지 12시간 연습을 하는 ‘텐투텐’을 공연 준비 초반부터 실시할 만큼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라며 “무대에서 자유로움을 느낄 정도로 연습을 많이 해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공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 준비 도중 반려견을 떠나보냈다. 그는 “자식 같았던 아이를 떠나보냈는데 연기를 위해 다시 상실감을 마주하는 것이 무서웠다”며 “다만 불행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관객의 인류애를 충전하는 장치들도 곳곳에 배치돼 있다. 비행기에 갇힌 동물들을 구조하는 동물보호운동가, 당당히 성 정체성을 밝히는 동성애자 커플, 유리천장을 극복한 아메리칸 에어라인 최초의 여성 기장 등의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아직은 살 만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작품이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지난 수년간 한국 사회에도 9·11 테러와 같은 거대한 불행이 찾아왔지만 피해자를 위로하고 희망을 제시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일까. 끔찍한 불행 앞에서 공공선은 어떻게 발휘되는가를 이 작품은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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