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눈밝은 편집자는 더께 앉은 글에서 진리를 발견한다”

애정으로 골방의 문장을 세상에 유출하는 편집의 세계

뉴욕타임스 기자 맥스웰 퍼킨스는 대형 출판사 스크라이브너스에 입사한 뒤 광고국을 거쳐 편집자가 됐다. 퍼킨스는 관행에 젖지 않고 작가를 발굴하는데, 스콧 피츠제럴드의 첫 번째 원고를 입수한 편집자가 그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토머스 울프의 책도 퍼킨스의 두 손에서 탄생했다. 퍼킨스는 어느덧 20세기 출판계의 거인으로 기억된다.

1962년 처음 출간된 ‘편집의 정석’은 출판계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는 명저다. 2016년 한국어로 뒤늦게 출간된 이 걸작엔 유명 편집자 38명의 진솔한 글이 수록됐다. 편집자가 저자의 가능성을 간파하는 계시의 순간을 시작으로, 책의 성공을 위해 편집자가 얼마나 고투하는지, 그럼에도 결국 낙망하여 저자와 어떻게 이별하는지를 일인칭 목소리로 들려준다.

편집은 노동이자 열정이다. 편집자는 먼저 사유의 물결에 그물을 던진다. 우연의 타래가 얽히고, 무명 저자의 원고가 편집자의 손에 들어온다. 이때부터 편집자는 두 얼굴이 된다. 하나는 저자의 친밀한 지적 동지, 다른 하나는 사악하기까지 한 잔소리꾼.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말했는지, 또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일관되게 말했는지를 점검하는 편집은 편집자 고유의 권능이요,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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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가 발행할 책을 선별해 간택하고, 어쩌면 허드렛일에 가까워 보이는 책의 편집을 진행하며 저자에겐 출판사를, 출판사에는 저자를 대변하는 일은 성직자의 수행에 가깝다. 책도 하나의 건축물일까. 그렇다면 문장이란 이름의 벽돌로 책의 골조를 쌓아 독자를 초청하는 준엄한 업무의 당사자는 저자가 아니라 편집자다.

그렇다면 편집자는 어떤 책을 원할까. 맥밀런 출판사의 리처드 마렉은 이 책에 실린 ‘어떤 책이 선택받는가’란 글에서 쓴다. “편집자로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작가들이 물을 때면 나는 ‘예전에 보지 못한 그 무엇’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글에서 희미한 한 줄기 빛을 움켜쥐려는 편집자의 마음은 하나의 우주를 최초로 발견하는 시선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고귀한 관계라도 선의만으로 유지되는 사이란 없는 법. 대부분의 저자는 결국 자신을 스타로 만든 편집자와 헤어지기 마련이다. 첫 책이 상업적으로 성공해도, 다음 책이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고 두 명의 타자는 늘 사잇길을 낸다. 편집자와 저자의 관계는 처음부터 이별을 전제해야 한다. 하지만 자력만으로 원고를 완성할 저자는 적으니, 저자는 편집자에 의존한다. 양자 간 관계는 아름다우면서도 참 이상한 사이다. 책 ‘편집의 정석’은 저 선량한 이중성을 파고든다.

글이 골방의 탁자를 떠나는 순간은, 눈 밝은 편집자가 더께 앉은 글에서 한 줌의 진리를 확인하는 그 순간부터일 것이다. 서지정보엔 이름 석 자 남지 않아도 편집자에겐 무관의 제왕이란 말이 썩 잘 어울린다. 한 권의 책에는, 인쇄되지 못한 비밀스러운 아우라가 숨겨져 있다. 그래서일까. 책 한 권의 무게감은 종이와 잉크의 합을 늘 초과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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